새로운 질서의 패러다임, 자하하디드

2026.02.13 관리자 조회수 97회

[새로운 질서의 패러다임, 자하하디드]

 DDP는 한국 근현대 건축역사에 있어서 가장 논란이 된 작품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단지 외국 건축가의 유명세나 건축비에 대한 이슈때문이 아니라 그 형태가 가지는 상징성에 따르는 다양한 반응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국건축이 성장해온 기존 논리와는 달리 파격적인 형태와 층의 구분이 없는 공간이 지닌 낮설음은 모든이들에게 상당한 충격이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비정형 형태가 가지는 의미를 논할때 공간의 효용성을 넘어서는 다른 가치론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러한 공간이 단순히 무엇을 담아내는 기능이 아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에도 주목해보아야 한다고 본다. 그러한 의미에서 하나의 획일적인 관점으로만 비판 할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어떻게 건축이 발전되어왔는지 그리고 이러한 건축 역사속에서 얼마나 많은 다양한 건축적 시도가 있어 왔는지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단순히 무엇을 담고 기능하기 위한 공간 너머에 새로운 시대의 공간을 열어젖히며 사회 문화적으로 복합적인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이렇듯 건축을 평가하는 잣대는 좀더 통시적이고 복합적이어야 한다. 되짚어보면 그렇게 수많은 파리시민이 반대했던 에펠타워가 지금 프랑스에서 없어서는 안될 상징이자 엄청난 관광수입을 가져다 주는 건축물이다는 점이 역설적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러한 학습효과 때문이었을까? 프랑스 및 유럽의 여러 나라는 하나의 스타일의 건축만을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의 획일적인 답안이 건축적 논쟁을 퇴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건축은 일종의 사회적 담론을 만들어가는 하나의 장이며 새로운 시대적 상징과 기능들이 통합된 종합예술로 바라보는 것이다. 

 현대 서구 건축의 성장 방식이 그러하듯이 익숙함과 새로움은 언제나 담론이 형성되는 충돌의 지점이었다. 기존 건축물을 철저하게 보존하기로 유명한 프랑스나 영국에서 세계를 이끌어가는 혁신적인 공간들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그들이 건축을 어떻게 리드하고 시대사적인 맥락을 이해하는지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이것은 단순히 하나의 공간을 만들어 어떠한 공간으로 쓴다는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맥락에서 어떠한 건축 역사를 기술하겠다는 일종의 마니페스토와 같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DDP 또한 형태적 생경함만으로 건축이 지닌 가치와 의미를 폄하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즉 건축사적 맥락과 좀더 통시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공간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비판하는 것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이런 DDP의 논쟁이 근대 한국건축사에서 가장 대중적인 논쟁이라는 점은 건축가로서 매우 유의미하게 생각한다. 사실 DDP이전에 한국의 건축적 논쟁이란 몇몇 비평가들과 건축가들에 한해 논의된 제한적인 것이었으며 이러한 한계로 말미암아 한국건축은 좀더 폭넓게 성장하지 못하였다고 생각한다. 성당 하나를 짓기 위해 수대를 걸쳐 건축가를 선정하고 완성하는 서구의 건축 역사 속에서 건축은 대중들에게 있어서 삶의 모든 시작이자 끝인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그런 수없이 많은 논쟁과 시행착오를 거쳐 현재 서구건축의 문화가 형성되었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한국사회에서 건축은 부동산 가치의 극대화를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인식되어 왔고 일종의 최대 용적의 가치를 구현하는 하나의 척도로 점철되어 왔던 것도 사실이다. 현재 3만달러의 소득수준을 가진 한국의 경제규모의 관점에서 우리 건축 문화를 바라보면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다. DDP는 이러한 한국적 상황에서 좀더 대중적으로 건축이 지닌 의미에 대한 논쟁을 좀더 보편적이고 세련된 방식으로 제기한 계기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논쟁의 시작이 아직은 설익은 것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논쟁을 자양분으로 좀더 폭넓고 다양한 관점에서 건축을 바라볼 수 있다면 DDP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을지 모른다.


-역사속에서 건축 형태의 발전-
 
 인류역사속에서 건축 형태는 사회가 지향하는 이념에 맞게 다양하게 변모해왔다. 또한 이러한 이념과 패러다임의 변화는 건축 공간의 혁신적인 변화를 유도하였고 이를 위해 다양한 기술적인 진화를 거듭해왔다. 그리스 시대의 열주의 간격이 기둥과 기둥을 상부에서 연결하는 인방의 사이즈에 의해 결정되었다면 로마시대의 건축은 공간의 확장을 위한 스팬 구조의 혁신적인 변화로 시작되었다. 즉 직선형태의 기둥과 보의 조합 형태를 벗어나 다양한 공간의 확장을 가능하게 한것은 돔Dome과 아치 Arch구조의 발명이었다. 아치의 형태는 기둥으로 확장할 수 있는 구조적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고안된 형태로 건축공간을 보다 넓고 크게 변화시킬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이었던 것이다. 즉 아치의 형태는 기둥이 지닌 유닛의 폭을 다양하게 변형시켜주었으며 좀더 유연하게 공간을 수직, 수평적으로 확장 가능하게 해주었던 것이다. 로마시대의 수로교는 그러한 직선형 구조를 곡명 아치를 통해 혁신적으로 개선한 좋은 예이다. 힘의 분산을 통한 공간구성법은 기술적으로 진화되어 건축뿐 아니라 토목 및 기계 공학등 다양한 영역에 합리적으로 적용되었다. 또한 로마 판테옹의 돔구조는 벽돌과 소석회 회반죽으로 두텁게 쌓아 올려지되 서로의 구조적 힘이 서로 맞물려 지지하는 시스템을 가진다. 이러한 곡면응력으로 구축되는 공간의 구성법은 추후 비잔틴 건축을 거쳐 근대 바로크 건축구법에 다양하게 영향을 끼치게 된다. 당대 최고의 구조기술인 돔과 아치는 이후 로마네스크 고딕건축 형성의 큰 밑거름이 된다. 

 로마건축과 달리 로마네스크 건축의 큰 특징은 반원형 아치와 같은 순수 기하학들로 구성된다는 점이다. 이념적인 이유와 더불어 높게 쌓아 올리는 방식의 기술적인 한계상 어쩔 수 없는 결론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로마네스크 건축은 두터운 벽을 통한 깊이감 있는 빛들로 채워지는 것이 특징이다. 이와 반면에 고딕건축은 이러한 반원형을 좀더 뾰족하게 개량하여 첨두아치를 사용하여 좀더 높은 개방감을 가지는 공간을 구현하였다. 이러한 형태의 진화는 사회적 이념, 즉 교부철학과 스콜라철학의 이념에 맞게 공간적으로 개량된 것으로 추후 근대 건축의 근간이 되는 수학과 공학의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최소화되면서 미려한 구조, 그사이를 채워주는 스테인드 글라스 조합비를 찾기 위한 수없이 많은 시도들은 추후 정량화된 데이터로 건축의 또 다른 진화를 잉태한 것이다. 이러한 고딕건축에서 발견되는 구조적 진화는 현대 건축이 지향하는 비정형성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즉 당시의 성당건축이란 당시 사회체계의 근간을 지배하는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형태적인 관점에서 정형, 비정형은 큰 의미가 없다. 그것은 구조로서의 하나의 형태, 철학으로서의 하나의 형태이자 절대 교리로서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고딕 이후 르네상스를 거쳐 바로크 시대에 이르러서는 고딕의 수직적 화려함 대신에 인간적 스케일에서 변화된 다양한 형태감들로 공간을 지배하게 된다. 특히 바로크의 공간은 고딕건축이 지향했던 장대한 빛의 공간대신에 온화하고 부드럽게 빛을 내부공간으로 끌어들여 공간을 구축하는 것이 특징이다. 즉 벽과 지붕을 연결짓는 아치형 볼트구조 대신 벽과 기둥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지어지는 일체화된 내부공간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보로미니의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San Carlo alle Quattro Fontane성당은 바로크 건축이 지향하는 공간미를 완벽히 드러내준다. 벽과 지붕은 하나의 연속적인 흐름으로 일체화되고 타원과 육각형에서 변모된 다양한 기하학들로 채워진다. 또한 타원형으로 생성된 돔과 이를 통해 전해오는 빛의 감미로움은 종교적인 빛의 감성이 어떻게 새롭게 해석된 수 있는지 드러내준다. 바로크 건축은 공간을 구축요소에 의해서 분절하는 것 대신에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 지으며 하나의 일체화된 공간으로서의 건축을 구현해낸다. 즉 건축이 관습적 형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며 심미적인 의미에서 공간이 혁신적 발전을 주도한다. 이러한 주요 부재간의 경계가 모호해진 바로크공간은 추후 아르누보 건축이 태동하는 시발점이 된다.

 이러한 바로크 공간이 경계가 해체된 의미의 공간이었다면 산업혁명 이후 건축공간은 다양한 구조적 시스템에 의해서 또다시 혁신적으로 진화하게 된다. 인구의 팽창과 물류의 이동에 따른 사회적 요구에 의해 역사Railway station 건축 및 교량이 필요해진 것이다. 즉 각 도시를 연결 짓는 역사건축을 위해서는 공학을 기반으로 해석된 새로운 유형의 엔지니어링 건축이 요구되었다. 구스타프 에펠은 그러한 새로운 시대의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이다. 기존 건축시스템이 벽돌과 석재로 이루어진 습식공법을 바탕으로 하였다면 에펠로 대변되는 엔지니어링 건축은 철골을 기반으로 다양한 형태로 건축영역을 확장해갔다. 즉 철골의 접합방식과 수학적 해석에 따라 정형적인 건축형태가 지닌 공학적 한계를 보다 자유로운 형태를 공학적으로 구현해낸 것이다. 특히 에펠타워는 그러한 공학적 해석으로 통해 구축된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그것은 형태적 자유로움과 수학적 공학이 접목된 구조물로서 추후 다양한 현대 철골건축의 확장가능성을 열었다. 서로 다른 수만여개의 부재들이 결합되어 구축된 에펠타워는 네개의 지점으로 하중을 분산시킨다. 또한 네개의 구조축을 아치형태의 프레임으로 연결지으며 구조적 합리성을 형성해낸다. 재료와 구조적 진화를 통해 새로운 시대의 이념에 맞는 건축이 탄생한 것이다.

 이렇듯 19세기말 20세기 초의 건축이 철골을 바탕으로 진화하였다면 20세기는 철근콘크리트의 대량생산화를 통해 다양한 지역적 특징을 지닌 건축이 발전되어왔다. 특히 르꼬르뷔지에는 철근콘크리트 구조를 통하여 그가 지향하는 근대건축의 형태원리를 구체화 해갔다. 초기의 유니테 다비타시옹을 비롯하여 말기의 롱샹 성당은 콘크리트 구조로 형성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과 이념을 제시한다. 특히 그의 작품 중 형태적으로 흥미로운것은 1958년 브뤼셀 만국박람회에 제안한 필립스 파빌리온이다.  콘크리트 구조에 튜브을 연결하여 Hyperbolic paraboloid의 이중곡면구조를 지닌 파빌리온은 음향학 이론에 기반을 둔 디자인이다. 일종의 수평과 수직으로 연결된 정형적 구조에서 벗어나 직선부재들을 이어 삼차원적 곡면 공간을 구성하였다. 새로운 구조체계에 대한 해석과 더불어 형태, 그리고 기능들이 총화된 그의 말년의 걸작인 것이다.

 이와 더불어 벅스민스터 퓰러는 이 시대의 새로운 형태를 가능하게 한 혁신적 엔지니어이자 건축가이다. 그는 구조적인 힘의 역학관계를 이용하여 다양한 유닛들의 조합으로 일종의 지오데식 Dome 을 제안하였다. 즉 건축을 구조적 유닛들의 조합으로 해석하고 다양한 형태 조합 및 변용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또한 자원을 최소로 소비하면서 모두가 좋은 삶을 누리는 방식으로 건축공간의 혁신적인 관점의 전환을 제안하였다. 건축공간을 만드는 근본적인 방식을 전환함으로서 형태적 진화뿐 아니라 공간의 기능에 대해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것이다. 20세기 중후반의 건축은 모더니즘이 지배하는 시기였지만 다양한 건축가와 엔지니어들은 그들이 사고하는 형태적 진화에 대해 많은 연구를 진행하였다. 구조엔지니어이자 건축가인 펠릭스 칸델라가 그 좋은 예이다. 그는 얇은 콘크리트 구조로 다양하게 건축적 형태 실험을 진행하였다. 스페인에 완공된 L'Oceanogràfic은 쌍곡 포물면이 하나의 유닛으로 물결치듯이 구조적으로 결합된다. 기존 건축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유연한 형태적 실험들이 구조엔지니어들의 재료에 대한 해석을 통하여 구현되기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형태에 대한 건축적 실험들은 후대 다양한 건축적 진화를 위한 밑거름이 되었다.  

 
-새로운 질서의 패러다임으로서의 자하하디드의 건축-

자하 하디드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작가가 있다면 말레비치 일 것이다. 실제로 그녀는 ‘말레비치의 텍토닉’ Malevich’s Tektonik 이라는 주제로 AA스쿨 대학원 졸업작품을 제출하였다. 이는 회화적 실험과 건축이 지닌 삼차원적 구축성을 연결하는 프로젝트이다. 이러한 이차원적과 삼차원을 넘나드는 하디드의 관점은 그녀의 초기작업을 중심으로 구현된다. 1982년에 제안한 The Peak Blue Slabs는 건축적 요소들이 삼차원적 시각 속에서 확장되고 산과 건축의 관계 속에서 역동적인 긴장감을 드러내준다. 삼차원적 건축이 역동적인 선들로 재편되어 이차원적 평면으로 구성되는 방법론에서 표면과 공간 사이의 간극을 읽어내려는 새로운 시도들이 엿보인다. 이러한 삼차원의 이차원적 드로잉을 바탕으로 첫번째로 건축을 구현한 프로젝트가 바로 비트라 소방서이다. 날카로운 각도로 예리하게 조합된 기하학적 볼륨들과 감각적으로 마감된 노출콘크리트 마감은 당시 소방서의 고정관념을 탈피한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 받았다. 마치 말레비치의 예리한 구성들이 삼차원적으로 구성되어 조합되듯이 공간은 분절되어 파편화되었으나 일정한 질서과 적절한 비례들로 기능을 배분한다. 그녀의 처녀작이자 출세작인 비트라 소방서는 당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과감한 예각디자인과 해체적 특징이 농후한 건축어휘로 주목을 받았다. 물론 이러한 디자인 어휘의 형성이 있기까지에는 그전에 축척 되었던 말레비치에 대한 자신의 삼차원적 해석이 기본이 되었음에 분명해 보인다. 또한 당시 스승이자 동료였던 램쿨하스와의 작업을 통해 새로운 건축에 대한 상당한 이론적 토론으로 자신의 디자인을 체계화했음이 자명하다.

 유럽의 여느 젊은 건축가들처럼 초기의 작업들이 완성되기까지 자하 하디드는 수없이 많은 인고의 시간을 거쳐야만 했다. 그녀의 고백처럼 첫번째 작품이 나오기까지 페이퍼 아키텍트라는 조롱을 감내해가며 팀원들과 함께 수많은 공모전에 도전하였다. 초기에 속하는 스트라스부르그의 정류장은 자하 하디드가 지닌 역동적인 선들이 어떻게 Landscape디자인과 맞물리며 강렬함 힘을 발휘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노출콘크리트 볼륨과 함께 구성된 원형 철골빔의 경쾌함은 일상적인 정류장과 주차장을 하나의 Landscape예술의 한 부분으로 승화시킨다. 속도가 지니는 방향성과 예리한 예각이 지닌 세련됨이 대지의 선형과 맞물리면서 건축과 조경이 융합된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구축된 것이다. 아마도 이때 당시에 정립된 지면과 건축의 일체화, 조경과 건축선의 일체화라는 하디드만의 독특한 어휘는 후기 패러매트릭 디자인에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당대의 주목할 만간 건축가들과 자하 하디드 건축이 구별되는 차이점이 발견된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아마도 그녀의 위대함은 동시대 건축의 전환기에서 자신이 정립한 건축의 모티브를 실제 현실건축에서 타협하지 않고 관철하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예각적 어휘와 조경과의 일체의 디자인으로 자신의 건축적 색깔을 정립하였지만 형태적으로는 아직 핸드드로잉 기반의 한계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시대의 변화와 컴퓨터 툴의 발전은 그녀의 건축에 커다란 전환점을 만들어주었다. 프랭크 게리가 항공기를 디자인할 때 쓰는 카티아 프로그램을 자신의 건축디자인에 최적화하여 도입하면서 디자인의 결정적인 중흥기를 맞게된 것처럼 자하 하디드 또한 형태적인 진화에 있어서 컴퓨터 툴을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하게 된다. 가령 오스트리아에 완공된 지하철 역사프로젝트의 경우 자유곡면으로 설계된 형태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의 초기작들에서 보여지는 예각으로 구성된 형태들은 표면을 삼차원적으로 쉽게 다듬을 수 있는 툴의 진화에 맞춰 자유형태적 요소로 진화하게  된것이다. 특히 이러한 비정형적인 형태를 분할하여 조합하는 원칙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자하 하디드의 비정형 형태의 큰 특징은 하나의 볼륨을 단일한 완결체로 파악하고 이를 자유곡면으로 형태 그대로 분할하여 구축한다는 점이다. 즉 건축이 지닌 공법상의 한계로 인하여 다양한 자유곡면을 지닌 볼륨은 다시 평평한 패널들로 분할하여 붙이는 방식 대신에 그 형태 자체를 분할하여 완결시킨다는 점이 특징인 것이다. 이 경우 프랭크 게리의 건축에서 발견되는 방식인 패널을 오버랩하여 붙이는 방식이 아닌 하나의 조각이 다른 조각과 완벽하게 일체화된 곡률을 지녀야 한다는 점이 큰 차이점이 있다. 즉 건축을 하나의 매끈한 조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중곡면의 해결과정은 자하하디드 건축의 진화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변곡점이었으며 이러한 형태를 구현하기 위해 기존의 전통적인 재료인 석재와 벽돌, 알루미늄대신 다소 경량인 FRP(Fiber Reinforced Plastic)이나 FRC(Fiber Reinforced Concrete)를 사용하게된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 위치한 노르트 케데 프로젝트의 경우는 요트를 만들 때 제작하는 방식을 적용하여 FRP로 이중곡면을 구성하게 되었다. 즉 프랭크 게리가 구겐하임 미술관의 표면을 티타늄으로 구현하였듯이 자하 하디드 또한 자신의 매끈함 자유 곡면 건축을 위하여 요트를 만드는 소재를 건축에 적용한 것이다. 이렇듯 컴퓨터 그래픽의 발전과 더불어 시공법의 진화는 자하 하디드 건축에 커다란 전환기를 가져다 주었다. 

 기존의 방식으로 해석할 수 없었던 비정형적인 형태를 손쉽게 스터디 할 수 있었으며 좀 더 자유로운 형태적 실험을 통하여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장해 나갈 수 있었다. 즉 초기의 예각적 선이 주요한 모티브가 된 시기와 더불어 그녀의 후기 패러매트릭 디자인 사이에 정형과 비정형의 선들을 넘나들며 디자인과 실제 건축적 구현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음이 분명하다. 결국 기술적 상황의 변화와 건축시장이 글로벌화되는 시점과 맞물리면서 그녀의 건축은 다변화된 세계시장에서 일종의 아이콘으로 성장해갔다. 즉 기존 도시에 대한 컨텍스트를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새로운 컨텍스트를 주장하는 하디드의 디자인이 곱게 보였을리 만무해 보인다. 하지만 반대로 건축을 통한 새로운 아이콘을 통해 새로운 도시적 정체성을 필요로 하는 곳에는 그녀의 건축이 새로운 도시와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다는 신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도시적 질서가 확립된 선진국 보다는 새로운 맥락의 변화가 필요했던 중동이나 개발도상국에 있어서 자하 하디드의 건축은 도시를 일거에 변모하게 해줄 효과적인 수단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자하 하디드만의 특유한 자유곡면 형태는 다양한 지역적 기술과 결합되어 글로벌한 시장속에서 새로운 자본과 도시체계의 아이콘이 된 것이다. 특히 과감한 형태적 상상력을 통해 새로운 도시적 상징물을 형성하고 이를 국가적 산업의 수단으로 필요로 하는 다양한 수요계층에는 매우 매력적인 건축이었다. 이러한 시대사적 흐름과 맞물려 자하하디드 건축은 세계적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었으며 좀더 체계화되고 완성도 높은 디테일을 구현하는 단계로 나아간다.

 이러한 비정형 형태 건축의 핵심은 패러매트릭 패턴을 보다 손쉽게 해석할 수 있는 툴을 얼마만큼 완벽히 통제하느냐에 있다. 하디드 사무소의 큰 특징은 기존 작업 툴의 한계를 벗어나 스스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엔지니어의 시선에서 자신의 건축을 쉽게 발전시킬 수 있는 일종의 스크립트 기반의 설계를 수행한다는 점이다. 즉 모든 직원들이 3D 툴을 능숙하게 다룰수 있을 뿐 아니라 복잡한 패러매트릭 디자인을 단시간내에 발전시키고 더 나아가 이를 시공시 구현하는 단계에서 상당한 노하우를 축척해 왔다. 즉 전세계 시장에서 이러한 자유곡면 건축을 구사하고 이를 시공상 완벽히 구현할 수 있는 건축적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또한 사무소의 급성장의 배경에는 런던이라는 도시적 특성과 AA 건축학교와의 협업관계를 빼놓을 수 없다. 즉 급성장하는 글로벌 프로젝트를 일거에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EU연합체계 내에서 유럽의 다른 나라 국적의 재능있는 건축가들을 쉽게 고용할 수 있는 구조가 뒷받침된 것이다. 특히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영국의 건축경기가 호황이었으며 동시에 워크퍼밋 발급이 상대적으로 쉬웠다는 점이 하디드 사무소의 성장배경중 하나이다. 또한 AA 건축학교내의 특화된 과정을 통해 손쉽게 자신의 철학에 맞는 트레이닝된 건축가들을 고용할 수 있었다는 점 또한 큰 차별점을 가진다. 하디드 건축이 패러매트리시즘으로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이를 해석가능하게 한 소프트 웨어 툴의 발전과 맥을 같이하고 이를 공유하는 학교시스템과의 협력관계를 통해 보다 손쉽게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시대적으로 글로벌화된 건축 시장에서 유동인구의 증가를 이끌어낼수 있는 일종의 구겐하임 효과에 대한 전세계적인 관심이 높았기 때문이다.
 
 
-DDP 프로젝트의 기술과 건축적 가치-

 DDP 프로젝트는 이러한 시대사적, 내부적 상황에서 이해되어야만 한다. 혁신적인 기술의 발전과 이를 재빨리 산업화 시킬수 있는 내재적 힘이 자하 하디드 건축의 근본적인 발전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DDP의 경우 외장에 쓰인 곡면 알루미늄 패널은 각각의 유닛이 각기 다른 사이즈와 곡률을 가진다. 이 경우 전체 패널링중 하나의 패널에 오차가 있을 경우 완결된 표면을 형성할 수가 없게 된다. 이러한 자유 형태의 볼륨를 구축가능한 패널로 분할하여 조립하기 위해서는 알루미늄이 지닌 재료의 연성을 곡면 데이터로 정확하게 생성해내는 공작기계를 필요로 한다. 일종의 3D 곡면 제작을 위한 공작기계로서 재료가 지닌 물성을 데이터로 인식하고 필요한 곡면을 일정강도로 두드림 가공으로 정확한 벡터값을 가진 패널을 양산해내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또한 DDP의 곡면은 기존 자하하디드가 비정형건축에서 사용했던 FRP 제작방식이 아닌 알루미늄 패널로 시도되었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특히 이러한 패널작업은 당시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난이도이자 선례가 없는 상황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술적인 진화의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판단된다. 또한 이중곡면을 구성하기 위해 다양한 사이즈로 분할되고 곡면의 유연한 시공을 위하여 타공패널을 이용하였다는 점이 독창적이다. 형태를 완벽히 구현해내는 것 뿐만 아니라 그 형태를 구현하기 위한 방수의 방식과 거터 트렌치의 해결방안 또한 새롭게 고안되어졌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외기의 온도변화가 심한 한국적 기후에 맞게 국내 기술진의 노력만으로 이렇게 완성도 높은 건축을 구현하였다는 것은 높게 평가할만 하다. 

 이러한 외부공간의 완성도외에 주목할만한 특징은 위계가 없는 내부공간의 구성이다. DDP가 가진 공간의 구분은 일반적인 층의 개념으로 정의내리기 힘들다. 즉 각각의 층들은 위계가 없이 수평적으로 연계되어 서로다른 높낮이로 공간을 연결짓는다. 이는 하디드건축의 큰 특징인 일체화된 내부공간과 더불어 내외부 공간을 하나의 연속선상에서 연계짓는 방식에 따른것이다. 기존 건축물에서 당연시되던 층과 건축과 인테리어의 분할이 DDP 건축에서는 사라지게 되고 새로운 층의 개념으로 구축된다. 이처럼 DDP는 하디드 건축이 지닌 내외부 공간의 특징들을 잘 담아내고 있다. 특히 도시적인 맥락에서 혼잡하게 얽혀있는 도시의 기억들을 하나의 축약된 풍경으로 담아내고 이를 내부공간으로 확장하여 연결짓는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초기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는 달리 완공 후 건축적 완성도와 도시의 새로운 질서를 유도하는 흐름들에 많은 사람들이 가졌던 회의론적 시각을 많이 상쇄시킨 듯 하다. 한때 한국사회의 한 단면을 대표했던 동대문 패션타운이라는 컨텍스트는 DDP가 들어섬에 따라 새로운 미래에 대한 관계성을 정립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과거를 향한 컨텍스트가 아닌 미래를 향한 새로운 중심으로서의 건축을 의미하여 아주 유효절절하게 한국도시의 한 단면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우리는 이 공간을 위한 기회비용에 대한 비판대신에 새로운 질서의 대변자로서의 이 공간을 어떻게 미래적 가치로 전환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보면 좋겠다.

2019.12
이정훈
[이 글은 서울문화재단으로부터 공식 기고 의뢰를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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