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건축을 찾아서]
지금으로부터 100여년전쯤 마르셀 프루스트는 그의 일생과 바꿀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을 완성한다. 시간과 의식, 그리고 기억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이 소설은 20세기 문학사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가져다 주었다. 이러한 새로운 흐름은 비단 문학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 이론은 인간의 꿈과 욕망을 무의식이라는 새로운 지평으로 접근하였고 아인슈타인은 기존의 양자이론은 넘어서는 상대성 이론을 주창했다. 피카소는 입체파라 불리우는 새로운 양식으로 재현의 형식에 머물러 있었던 기존 서양 미술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았다. 건축과 도시의 영역은 보다 본질적으로 삶의 속도와 방식을 바꾸고 있었다. 도시는 팽창하고 새로운 시대의 속도를 받아들이기 위해 새롭게 변모하고 있었다. 기차역과 다리와 같은 신종 디자인의 영역은 엔지니어링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야기시켰고 이는 기성 건축가가 차지해왔던 역할과 영역에 상당한 긴장감을 야기했다. 또한 오귀스트 페레가 제안한 철근콘크리트라는 신공법은 조적 일변도의 기성 건축 관행에 시대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었다. 이후 르 꼬르뷔지에는 Domino 시스템을 통하여 건축에 있어서 시대정신이란 무엇이며 이념과 기술의 통합자로서 건축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100여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 시대를 반추해보면 100년전의 공학적, 예술적 성취의 바탕 위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건축은 일견 무한히 진화 한 것처럼 보이지만 구축의 방식과 소재의 진화일 뿐 그 본질적인 과정과 역할은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서양적 의미에서 전통적 건축가란 일종의 철학자이자 수학자로서 각 분야별 장인들을 모으고 그들의 영역을 분할하며 새로운 이념을 구축하는 인문학적 영역의 연장선상에 놓여진 직능이다. 그렇듯 건축은 시대의 의미를 통합하고 포섭하며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는 직업이었다. 그것은 시대정신이 정한 사회학적 성찰 위에 세워진 새로운 방식의 삶의 구축자이자 미래적 가치를 구현하는 혁신가였던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시작을 앞둔 우리의 현실은 녹록치 않다. 변화하는 세계에 새로운 건축적 담론들을 생산해내지 못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쌓아온 건축가의 애매한 위치설정은 시장으로부터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그것은 길드의 통합자이자 시대정신의 리더로서 존경 받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자 현재의 건축가들에게 내리는 시장의 냉정한 평가라 생각된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가 바라 보야 할 것은 단순히 기술적, 기능적 성취로서의 건축이 아닌 건축이라는 직능이 지닌 본질에 관한 것이다. 즉 통합의 건축이란 분업화된 사회속에서 개별자로서 존재하는 건축이 아니라 시대정신을 포섭하고 사회적 의미체계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는 건축을 의미 한다. 100년전 급격히 변화하는 시대상황 속에서 수많은 건축가가 미래의 건축에 대해 고민 했을 것이다. 하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 그 시기를 반추해보면 미래적 가치란 결국 본질에 접근할수록 가까워짐을 알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비트루비우스가 내린 건축가의 정의를 다시한번 새겨볼 필요가 있다. “건축가는 학자이고 숙련된 제도사이자 수학자여야 하며, 역사 지식에 익숙하고 철학을 즐겨하며 음악과 친숙하고 의학을 알아야 하며, 천문학과 천문학적 계산에도 능통해야 한다.”
2017.08
이정훈
[이 글은 건축사협회상 40주년 특별전 기고 의뢰를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