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루미늄과 건축, 그 진화의 역사

2026.02.20 관리자 조회수 94회

[알루미늄과 건축, 그 진화의 역사]

 

 현대건축에서 알루미늄은 빼놓을 수 없는 소재이다. 금속 창호와 외장재의 대부분이 알루미늄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현대건축에 있어 알루미늄의 비중은 막강하다. 그 이유는 고층화 된 현대 도시에 적합한 경량 소재인 데다 내부식성까지 강하니 다른 금속소재에 비해 사용성이 월등히 앞선 것이다. 게다가 창호의 경우 합리적인 에너지 관류율 값까지 갖추었으니 기후변화에 민감한 현대건축에 있어 금속 창호는 알루미늄이 정석이라 보여 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알루미늄을 합리적인 외장재로서 인식하게 되기까지 무려 200년동안의 험난한 여정이 있었다.

 

 알루미늄은 원자핵속에 양성자가 13, 전자를 13개를 가지고 있다. 원소 주기율표에서 13번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알루미늄은 탄생부터 엄청난 고난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알루미늄의 주 원료인 보크사이트는 붉은 돌색깔을 띄어 철을 연상시키는데 산화알루미늄 60퍼센트를 함유하고 있다. 다만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성질이 강하기 때문에 이 비철금속은 다른 원소와 강력하게 결합한 상태로만 존재한다. 문제는 이 상태에서 알루미늄을 분해하는 데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는 데에 있다. 20세기 초 이러한 초기비용의 증가 때문에 알루미늄에 대한 부정적인식이 팽배하였고 이를 산업화하는데 막대한 자금과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군수적 의미에서 알루미늄은 매우 중요한 소재로 인식되었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알루미늄은 산업시스템속에서 생존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소수의 건축가들이 알루미늄을 건축의 주재료로 사용하고자 시도하였고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범용 양산시스템으로 발전된 것이다.

 

 19세기말 20세기 초 격동의 시대는 새로운 스타일의 건축을 요구하였다. 산업혁명이후 급증하는 물류의 이동과 인구의 증가는 공급이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을 초래하였다. 이는 궁극적으로 새로운 소재를 활용한 건축의 출현을 앞당기게 되었다. 당시 진보적 건축가들이 처음 실험한 재료는 철과 유리, 철근 콘크리트였다. 조셉 팩스톤 (Joseph Paxton)은 수정궁 (Cristal Palace)에서 유리가 가진 건축적 가능성을 구현하였고 구스타프 에펠 (Gustave Eiffel)은 에펠타워를 통해 철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을 전세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오귀스트 페레 (Auguste Perret)는 철근콘크리트를 이용한 건축이 곧 범용화 될 것임을 시현하였고 그의 제자 르꼬르뷔지에 (Le Corbusier)에 이르러 이러한 신소재가 새로운 시대의 이념이 될 것임을 구체화하였다. 당시 이런 실험적인 소재는 생산시설, 안정된 수요의 미비로 인해 단가가 높아 건축분야에서는 쉽게 사용할 수 없는 소재였다. 알루미늄 또한 이러한 신소재의 출현과 더불어 새로운 혁신성을 상징하는 소재였다. 다만 일반 주철과는 달리 경량화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주로 군수품이나 특수기계의 재료로 제한적으로 사용되곤 했다. 즉 초기 생산단가가 높고 제한적인 물량으로 말미암아 자동차나 비행기의 보디 및 엔진의 피스톤 등 당시 최첨단의 소재에 국한되어 사용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다른 신소재와 마찬가지로 대량 양산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건축분야에서는 지극히 제한적으로 사용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알루미늄은 주철과 같은 고전재료를 보조하는 재료로 인식되었고 건축양식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하였다. 이런 알루미늄을 새로운 시대를 위한 소재로 활용한 것이 바로 당시 아방가르드 건축가들이었다. 당시 새로운 디자인 및 건축이론의 출현과 더불어 이를 뒷받침할 새로운 재료가 필요했던 것이다.

 

 근대를 상징하는 혁신적인 건축가인 오토 바그너 (Otto Wagner) 1902년 완공된 비엔나의 전신국 건물인 ‘디 차이트’의 주 현관에 알루미늄을 사용했다. 또한 1906년 완공된 비엔나 우편 저금국 건물내부에도 알루미늄을 주요 내장재로 사용하며 새로운 소재의 존재감을 확인하였다. 즉 그는 당시 생소했던 알루미늄을 주요 재료로 사용하여 새로운 시대의 규범을 재료의 감성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즉 기존 철의 둔탁한 감성과는 달리 알루미늄이 지닌 새로운 재료미학을 통해 고전적 모더니즘을 새로운 차원으로 계승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신소재의 사용은 당시 아방가르드 건축가들에게 자신의 건축 미학을 정립하고 상징화 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 기존 전통적인 질서를 거부하고 새로운 건축의 규범을 주창하는데 새로운 재료의 물성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알루미늄은 오토 바그너 이후 다양한 건축가 들로부터 건축 재료로서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특히 르꼬르뷔지에 (Le Corbusieur)는 그의 저서 ‘새로운 건축을 향하여’에서 당시 비행기, 선박, 제분소의 형태 및 소재에서 건축의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였다. 이를 근거로 근대 건축 5대원칙을 모더니즘 건축의 규범으로 정리하였으며 살기위한 기계로서 집을 제안하였다. 당시 알루미늄을 주목하였던 것은 경량성, 내부식성을 바탕으로 다른 산업소재에 사용된 사례를 들어 이를 건축 산업에서 응용할 가능성을 찾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소재적 특성을 바탕으로 혁신적인 건축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건축에 적용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 중 벅스민스터 퓰러 (Buckminser Fuller) 1920년대 후반 공장에서 만드는 것처럼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가격도 저렴한 집을 설계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생각한 집의 중량은 겨우 3톤이었고 자동차 한대 가격정도였다. 기존 비행기를 제작한 알루미늄 생산설비를 활용하여 조립식 주택을 제작하기에 알루미늄은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재료였다. 그가 제안한 다이맥션하우스 (Dymaxion house)는 비행접시 형상을 한 미래주의적 외관으로 파격적인 주거유형 이었다. 특히 주 부재를 강철과 알루미늄으로 제작하여 6각형 형태를 띈 유리 우주선 캡슐을 연상하게 한다. 이 캡슐내부는 평면구성에 맞춰 개별적 주거공간으로 나뉘는데 건축구조가 지닌 인장성과 조립성을 결합한 혁신적인 주거 유닛인 것이다. 당시 벽돌과 석재가 일반화된 주택시장에서 공장에서 제작한 조립식 주거 유닛은 보다 손쉽게 양질의 주택을 제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이 다이맥션 하우스를 시작으로 퓰러는 1940년 중반 이와 비슷한 형태의 개량된 위키타 하우스 (Wichita house)도 개발해 첫번째 제품을 내놓았다. 비치 항공사 (Beach Aircraft)가 제공한 도구들과 숙련공들을 이용해 6천파운드 정도의 무게를 지닌 주택을 만들었다. 특징적인 것은 중심기둥에 볼륨이 메달려 있는 형태이며 각 부품은 10파운드가 넘지 않아 한사람이 옮길 수 있을 정도로 가볍다는데 있다. 즉 한사람이 전체를 조립할 수 있고 각 부품들을 사이즈에 맞게 선적할 수 있어 대량제작이 가능한 상용화를 고려한 시도였다는 점에 역사적으로 큰 가지를 지닌다.

 

 동시대에 알루미늄을 활용한 주거 유닛을 제안한 건축가로 장 프루베 (Jean Prouve)를 빼놓을 수 없다. 장프루베는 건물 전면을 공장에서 미리 규격 생산한 재료로 장식하는 실험을 했다. 그는 아르누보의 본고장인 프랑스 낭시 출신건축가로 철세공을 공부하였다. 1930년대 중반 프루베가 자신의 혁명적인 조립식 벽의 재료로 선택한 것은 강철이었지만 차츰 알루미늄을 이용하는 횟수가 늘어갔다. 특히 대량생산화와 현지화를 위한 운반체계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알루미늄이 가진 경량성에 주목한 것이다. 그가 디지인한 메종 트로피칼 (La Maison Tropicale)은 서아프리카에서 프랑스 식민에 필요한 주택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안하였다. 따라서 집은 가볍고 조립하기 쉬워야 했으며 현지에 적합한 내구성을 지녀야 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알루미늄은 모바일 건축에 적합한 최선의 소재였다. 특히 집의 프레임구조도 서아프리카의 열대기후에 맞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독창적인 자연 냉각 시스템을 구현할 수 있었다. 즉 지붕의 열을 사용하여 벽의 구멍을 통해 천장까지 신선한 공기를 끌어들여 건물내 자연환기가 가능하게 한 것이다. 또한 이중 스킨 단열벽과 작은 원형창으로 제작된 슬라이딩 도어는 대량 생산으로서의 건축과 미학적 경계에서 상당한 고민을 하였음을 보여준다. 역설적이게도 이 독창적인 건축은 단 세 채만 만들어졌고 콩고의 수많은 내전에 살아남아 영국에서 전시되었다. 그는 사회변혁을 위한 도구로서 조립식 건축을 제안하였다. 이는 산업 모더니즘의 아이콘으로서 공간이 지닌 기능성을 표준화 함으로서 하나의 주거 유형이 다양한 장소에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혁신을 지향하는 건축가들의 실험 뒤에는 1,2차 세계대전을 거쳐 성장한 군수산업 이 후 알루미늄을 건축 및 대중재로서 자리매김하고자 한 관련 기업들의 치열한 노력이 있었다. 새로운 소재로서의 강점을 부각하고 새로운 영역에서 알루미늄을 양산화하기 위해 다양한 성분을 합성시켜 알루미늄이 가진 내부식성 등을 좀더 범용산업재로서 적합하게 발전시킨 것이다. 이러한 부단한 과정을 거쳐 1950년대 초반이 되어 서야 유럽건축양식에서 건물 전면에 알루미늄을 장식하게 되었다. 알루미늄의 가능성이 확인되고 대량 생산시스템이 갖춰지자 건축자재로서 알루미늄은 놀랍게 확장되어갔다. 일반적인 범용자재로서 기존 석재와 벽돌을 대체하는 새로운 상징적 소재로서 눈부시게 발전된 것이다. 또한 건축이 고층화 되는 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시공성은 접합 디테일의 발전과 더불어 알루미늄 패널의 시공성, 경제성을 극대화 하였다. 경량이라는 강점과 더불어 합리적인 열관류율, 그리고 풍압을 견디는 소재로서 더할 나위 없었던 것이다. 특히 내구성을 증가하기 위해 개발된 마그네슘(Mg), 실리콘(Si)을 포함한 6000시리즈의 알루미늄 외장재는 도장방식의 진화와 더불어 다양한 미학을 충족시킬 수 있는 금속 외장재로서 발전하게 되었다. 즉 표면 코팅방식의 개발에 따라 다양한 색감을 구현할 수 있었고 유리가 지닌 투명성과 더불어 현대성을 표현하기에 최적의 대안으로 자리매김하였던 것이다.

 

 최근에는 기존 판형 패널을 벗어나 다양한 곡률을 가진 곡면패널을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항공기, 선박에 사용하였던 3D소프트웨어인 카티아 (Katia)를 건축분야에 적용하면서 곡면형태를 데이터로 연산할 수 있게 된 덕분이다. 알루미늄이 지닌 특유의 연성과 경량성을 이용하여 원하는 데이터에 맞게 제련할 수 있는 곡면 자동기계를 생산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중 대표적인 건축물이 한국에 지어진 동대문디자인 플라자이다.

 

 자하하디드 (Zaha Hadid)가 디자인한 DDP는 수천개의 자유곡면을 가진 알루미늄패널들로 구성된 최첨단의 건축물이다. DDP의 경우 외장에 쓰인 곡면 알루미늄 패널은 각각의 유닛이 각기 다른 사이즈와 곡률을 가진다. 이 경우 전체 패널링중 하나의 패널에 오차가 있을 경우 완결된 표면을 형성할 수가 없게 된다. 이러한 자유 형태의 볼륨를 구축가능한 패널로 분할하여 조립하기 위해서는 알루미늄이 지닌 재료의 연성을 곡면 데이터로 정확하게 생성해내는 공작기계를 필요로 한다. 일종의 3D 곡면 제작을 위한 공작기계로서 재료가 지닌 물성을 데이터로 인식하고 필요한 곡면을 일정강도로 두드림 가공으로 정확한 벡터값을 가진 패널을 양산해내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또한 DDP의 곡면은 기존 자하하디드가 비정형건축에서 사용했던 FRP 제작방식이 아닌 알루미늄 패널로 시도되었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특히 이러한 패널작업은 당시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난이도이자 선례가 없는 상황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술적인 진화의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판단된다. 또한 이중곡면을 구성하기 위해 다양한 사이즈로 분할되고 곡면의 유연한 시공을 위하여 알루미늄 타공패널을 이용하였다는 점이 독창적이다. 형태를 완벽히 구현해내는 것뿐만 아니라 그 형태를 구현하기 위한 방수의 방식과 거터 트렌치의 해결방안 또한 새롭게 고안되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외기의 온도변화가 심한 한국적 기후에 맞게 국내 기술진의 노력만으로 이렇게 완성도 높은 건축을 구현하였다는 것은 높게 평가할만 하다.

 

 이렇듯 알루미늄은 200년의 고난의 역사끝에 탄생한 새로운 소재이다. 이 비철금속은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내고 새롭게 창조해내고 있다. 앞으로 진화하게 될 우리의 문명에서 알루미늄은 더욱더 진화할 것이고 또 다른 시대를 여는 주인공이 될듯하다. 건축가 미스반데로에 (Mies Van der Rohe) 1956년 다음과 같이 예언했다.

 

"알루미늄의 위험성은 이것을 가지면 원하는 데로 모든것을 할 수 있으며 정말 그 한계가 없다는 것이다."

2023.09
이정훈
[이 글은 MATTER 매거진으로부터 공식 기고 의뢰를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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