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우스 우즈의 드로잉과 유토피아
2026.02.20 관리자 조회수 106회[레비우스 우즈의 드로잉과 유토피아]
흔히 우리는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사실 스마트폰 하나면 수고스럽게 몸을 쓰지 않아도 뭐든 해결되는 시대이니 몸이 편한 세상이 맞긴 맞는 것
같다. 요즘 건축과 학생들이야 작업의 결과물을 디지털로 출력하는 데 익숙하지만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에
놓인 시대에 학교를 다니던 필자에겐 손으로 그리는 투시도가 그 당시 건축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아날로그의
마지막 세대는 디지털화할 세상의 거대한 변화를 직시하면서도, 더디고 투박하지만 그래서 정감 넘치던 손맛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손이 해낸 일들을 기억하는 방식이자 손이 해낸 수고스러움의 가치를 공유하는
교감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학창 시절을 보낸 대다수 건축학도에게 레비우스 우즈(Lebbeus Woods)는 통상적으로
이야기하는 건축가가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건축하는 건축가였다. 페이퍼 아키텍트(Paper architect)였던 그는 건물을 짓고 그 공간성을 통해 자신의
세계관을 말하는 것이 아닌 일종의 건축적 ‘드로잉’을 통해 자신의 건축과 철학을 이야기하던 사람이다. 그의
손맛 나는 드로잉은 세련되다 못해 치명적인 매력이 있었는데, 당시 그의 드로잉들을 습작하지 않은 학생이 없을
정도로 추앙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의 드로잉만으로 그의 건축을 정의하기엔 뭔가 아쉽다.
역사를 잠시 들추어보면, 페이퍼 아키텍트의 대부분은 실재의 한계와 현실을 감성적으로
조롱하면서 자신이 꿈꾸어온 세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데 몰두해왔다. 그 과정은 일종의 현시대에 대한 비판이며
다가올 다음 시대에 대한 유토피아적 세계관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18세기 이탈리아 건축가이자 동판화가인 피라네지(Piranesi)는 그가 추구하는 새로운 공간의
감성을 거칠고 강렬한 투시도 속에 표현해냈으며, 프랑스의 건축가 불레 (E. Boulee)는 데카르트 기하학에 근거한 절대적 시간과 공간 개념을 구 (Shpere) 형태의 뉴튼 기념관
속에 담아냈다. 1970년대 건축 집단, SITE의 단독주택을 적층시켜
만든 충격적인 고층 아파트 계획안과 아키그램 (archigram)과 피터 쿡(Peter
Cook)의 워킹 시티 계획안은 그 자체가 스케치적 한계를 넘어 건축의 새로운 미래적 가능성과 그들이 염원하는 유토피아를
보여주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런 맥락에서 다시 보면, 레비우스 우즈가 보인다. 그는 자신이 꿈꾸는 유토피아적 세계에 대한 철학을 그의 드로잉
속에 여과 없이 표현해냈다. 특히 그의 스케치들은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 (Miyazaki
Hayao)의 <미래소년 코난>을
연상케 하듯 인류의 불확정적 미래에 대한 불안과 새로운 공간의 구축 방식에 대한 감성이 충만했다. 의미가
있는 것은, 암울해 보이는 미래적 이상향에 대한 이야기들이 단순한 건축적 스케일을 넘어서 삶과 죽음의 철학적
사유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드로잉들은 단순히 모더니즘 건축 공간이 지닌 한계에 대한 절망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갖고 있던 삶과 도시, 그리고 인류 미래에 대한 은유적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
특히 분단된 한국의 DMZ 프로젝트 (1988년작)에서 이야기하는 그의 유토피아관은 꽤나 흥미로운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는 일종의 갈등 상태이고, 극단적인 조화의 상태는 곧 죽음이라
말한다. 유토피아란 서로 다른 대립각 사이의 힘의 균형을 의미하는 것이며, 바로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갈등을 극복하고 평화로운 상태인 조화 (Harmony)를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DMZ란 어쩌면 이러한 갈등의 단면을 보여주는 현실적 대상이자 상징이며 새로운 유토피아를 위해 극복해야 할 대상임을 그는 말했던 것이다.
그의 드로잉 중 는 전쟁으로 폐허된 도시 속에서 이를 재구축하는 전쟁 기계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의 다수의 드로잉은 실제로 사라예보 전쟁을 통한 도시의 폐허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바 있는데, 이는 마치 피라네지 (Piranesi)가 꿈꿔온 새로운 도시, 건축 공간의 단면처럼 유토피아를 향한 현재의 반성과 미래적인 예시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그의 작품 는 모더니즘 이후 새로운 도시 구축에 대한 그의 생각을 해체주의적 방법론을 통하여 드러낸다. 수많은 건축가가 기존 건축에 저항하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과 달리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내는 생성자로서 존재했던 것이 레비우스
우즈다.
세상의 모든 건축가는 유토피아를 꿈꾼다. 건축이 매력적이면서 난해한 것은 바로 이런 인문학적 이데아와 현실의 한계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로, 건축은 거대한 자본과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는 집단적 이해관계 속에서 탄생한 갈등의
합의체로서 예술이다. 이런 한계가 존재하기에 페이퍼 아키텍트 역시 존재 이유를 갖는다. 페이퍼 아키텍트는 단순한 스케치 속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 그리고 앞으로 구축해야 할 건축적 메시지를 정제해서 드러내왔다. 레비우스 우즈의 손짓은 이미
역사가 되었고, 그의 드로잉들은 여전히 새로운 시대의 건축을 이야기한다. 또한 그는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모든 것에 저항하기를 원한다.
“Resist the idea that architecture save the world.”
2013.03
이정훈
[이 글은 MUINE으로부터 공식 기고 의뢰를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