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with H.ART Magazine
2026.04.01 관리자 조회수 126회
Q: 유년시절 건축을 특별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A: '냄새', 저한테는 건축이 냄새이자 향기입니다. 사람들마다 어렸을 때 여름 바캉스를 보내는 곳이 있잖아요. 저에게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시골집이 바캉스를 보내는 곳이었어요. 그 집은 소박하지만 이국적인 풍경이 그려질 만큼 뒤에는 산이, 앞에는 마당이 있는 집이었어요. 닉네임이 ‘꽃집’이라고 불릴만큼 많은 조경수와 분재까지 있었으니까요. 그 집 툇마루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며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른 시각에는 문풍지를 통해 새어 들어오는 새벽 기운의 차가운 냄새와 아직 따뜻한 온돌방의 온기가 만나는 독특한 느낌이 있지요. 낮에는 옹이진 나무에 손가락도 넣어보고, 사람들이 많이 다녀 닳고 닳아 맨질맨질해진 마루의 촉감을 느껴보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녁에는 집집마다 밥을 짓느라 장작을 태우는 냄새가 납니다. 밥짓는 냄새가 저녁시간임을 알려주는 시계가 되어주곤 했습니다. 저에게는 여러 추억중에서도 냄새가 가장 기억에 많이 남아서 종종 떠오르곤 합니다. 이런 사소한 기억들이 향기가 되어 건축을 하는 데에 정서적인 영향을 많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Q: 학창시절 건축과 철학을 함께 공부한 경험은 소장님께
어떤 향기로 남아 있으신가요?
A: 지금도 20년 전 친구들을 만나 학창시절을 이야기하다보면 저는 고민을 많이했던 친구로 기억되고 있었습니다. 다르게 말해서 방황을 많이 했다는 이야기 일 수도 있지요. 내가 왜 공부를 해야하고,
어떤 일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방황을 고3때까지 하였는데, 이상하게 그 어린시절에 “내 진정한 소명이란 무엇일까”라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자라면서 그
고민이 어느정도 정리가 된 후에는 남들이 어떤 일을 하던 저에게 일희일비 거리도 되지 않았어요. 학창시절은
제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는 과정이 고민이었고, 그런 고민을 통해 선택하게 된 건축학교를 다녔던 시기는 제게
너무나도 행복했던 시절이었습니다.
Q: 건축가로서 자신의 디자인 스타일을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A: 저는 건축의 본질이 구축성(constructiveness)에 있다고 믿습니다. 건축이 다른 예술과 구별되는 점은 기능과 형태의 변화가 구조적 구축성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저는 건축의 구축적 본질과 그것이 수반하는 재료적 일관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모든 대지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이를
해석하는 과정 속에서 구축을 통해 드러나는 구조적 특성이 나타납니다. 저는 장소에 담긴 의미 있는 이야기를
재료의 구축성과 장인적 디테일을 통해 건축으로 번역합니다. 이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저의 건축은 '디지털 도구로 무장한 구축적 장인정신(constructive
craftsmanship)'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철학을 통해 건축을 타자화(他者化)해서 보았다”
민족예술인총연합회에서 주최하였던 강의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심광현 교수님을
비롯한 수많은 교수님들의 강의들이었는데요. 그맘때 저는 학교 안 건축수업에서 들을수 없는 철학과 건축에 관한
강의를 끊임없이 찾아서 들었습니다. 1-2년동안 단순한 암기/필기 수업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납득이 되는 수업을 찾아 다녔어요. 어린마음이었지만 그 시절에 타자他者가 되어서 건축을
바라보고자 노력했습니다. 다른 나라에 가서 우리 나라의 건축을 볼 때의 느낌이라고 할까요? 일반적인 대학교육에서의 건축은 타자화(他者化)를 해 볼
시간을 주지 않았습니다. 다른 분야의 시각에서 ‘이게 이렇구나’라고 이해를 바라기가 힘든 실정이었지요.
하지만 철학과 복수 전공을 통해 저는 타자가 되어 건축을 봐 올 수 있었습니다. 다른 분야를 통해서 건축을 볼 기회가 있었던 것죠. 그래서 철학공부를 하시는 분들께서는 ‘건축을
잊고 철학만 공부해야 한다’는 충고를 하시기도 했는데, 어찌 보면 치기 어리고 맹목적이던 도전을 했던 그
시기가 저에게 참 중요했습니다.
“일상속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방법을 알아가는 것”
어느날은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책을 읽고 있었는데 책의 세 구절이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리 읽어봐도 어떠한 구절들은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어요. 잠시 숨도 돌릴 겸, 파고들었던 책들에서 창밖의 노을로 시선이
옳겨 갔을 때 왜 그랬는지, 그 노을을 하염없이 바라봤어요. 문득 그
노을로 지어진 그림자와 건물의 풍광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지더군요. 그때가 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Being the Time)’의 어떤 챕터를 읽고 있었는데,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부분 이었거든요. ‘존재는 존재가에 의해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고, 존재자는 존재에 의해서…’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하는 고민을 하던 찰나, 창밖의 집과 노을의
모습이 책의 내용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현상학이란 것도 일상적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판단중지를
하고, 다르게 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었는데 아마도 철학이란 ‘아, 저런부분일수
있겠구나’하는 가능성을 그때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쌓이면서 똑같은 일상 속에서 사물을
바라 보는 방법을 스스로 알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철학수업들은 거대한 바다에 발을 한번 담그는
정도의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닷물을 머리로만 인식했다면 그 촉감과 향기는 영영 기억하지 못했을 겁니다.
Q: 프랑스에서의 유학시절과 세계적인 건축사무소에서의
경험은 어떠했나요?
A: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배웠던 철학이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는 도대체 무엇을 얘기하고자 했는가? 였다면 프랑스에서의 철학은 '일상과 우리의 삶. 그 삶속에서의 개념을 정리하는 것’이였습니다. 단순히 건축만 공부했더라면 하나만 얻어 왔을 지 모르겠으나, 철학이라는 밑거름을 통해 두배,
세배 더 얻을 수 있던 확장의 시간이었습니다. 거창한 담론은 아니지만 철학적 관심이
건축을 비롯한 여러 방면에 확장되어 사람이 사물을 바라보는 자기의 관점에 대한 정립이 사소한 일상들 속에서 온다는 것을 느끼고 즐길 수 있었던
통찰의 시간이었습니다.
“시게루 반을 만나다”
프랑스에서의 유학생활을 돌이켜보면 아주 힘든 시기였다고 지금에서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국비장학금으로 무작정 프랑스로 건너갔고, 일반적인 프랑스 건축대학에서의 건축공부가 아니 ‘재료’를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유학시절 동안 깊이있게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재료였고 그것을 공부하고 싶다는 제 목표였습니다. 그런 이유로 프랑스 건축대학이 아니라, 하고싶은 공부를 찾아 낭시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좋아서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렸어요. 제가 학교를 마칠 즈음 당시 퐁피두 메츠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었던 시게루 반 파리 건축사무소에서 일을 하고 싶다고 집요하게 연락한 끝에 몇 달 만에 답신이 왔습니다. 하지만 답신은 ‘일주일의 시간을 줄 테니 발표준비를 해서 와라! 라는 내용이었고, 꿈만 같던 발표가 끝난 후 들었던 '다음주 월요일부터 출근하세요'라는 대답은 정말 기뻤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저는 시게루 반 건축사무소에서 일을 할 수 없었다면 낭시 집을 이미 뺀 뒤여서 갈곳이 없었거든요. 플랜 B라고는 없는 정말 무모한 일이었어요.
냉정하게 얘기하면 그때부터 고생이 시작된 거 에요. 국제무대에서 어떻게 살아 남아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저의 고생길이 열린 거죠.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3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고, 너무나 프로페셔널 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가진 것이라고 열정밖에 없었던 한국에서 온 촌놈이 국제적인 건축사무소에서
살아남으려면 ‘죽도록 열심히 일 하는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에요. 주말엔 항상 영어 과외를 받았고, 주중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어요.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그렇게 해야 합니다. 얼마나 출근길이 지옥 같고 일이 힘들었으면,
건축사무소가 위치했던 퐁피두 센터 5층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파리의 에펠탑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한번도 없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시게루 반 건축사무소에서 일을 하며 세계적인 무대에서의
예술이라는 계보를 알게 되고, 실무를 배우고, 냉철한 현실 인식을 하게
되었고, 덤으로 그 기간 배우게 된 영어/불어 등의 언어는
7-8년동안의 프랑스 생활에 많은 힘이 되었지요.
Q: 다른 건축가들의 건물을 보고 크게 감동 받은 적이
있으셨나요?
A: 여느 건축가와 다름없이 유럽에서 수많은 건축 순례를 다녔습니다. 알바 알토 (Alvar Aalto)의 건축순례로 스칸디나비아 곳곳을 다니기도 했고, 카를로 스카르파(Carlo Scarpa)순례 때는 베니스, 비첸차, 베로나등을 다니며 한 건축가의 건물만을 순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카를로 스카르파 건축순례 - 다른 건축가의 건물에 접신되다."
트레비소에 위치한 브리온 베가 공동묘지처럼 대단한 건축물 순례를 다닐때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불렀습니다. 그 건축물들을 건축한 건축가가 된 것 같이, 마치 접신을 한 것 같았는데 이 디테일이 어떻게 나왔는지 이해가 되고, 그 이유들이 다 읽히고 보였어요. 그런 순간들이 그동안 어떤 건축공부를 할 때보다 재미있었습니다. 정말 식사가 필요가 없을 정도였어요. 타자가 되어 다중시점으로 건축을 보고, 순례 길의 움직이는 풍경들도 계속 보았습니다. 건축물을 더욱 입체적으로 보고 있었어요. 후각적, 촉각적, 정말 다각도로 건축을 이해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그런 느낌을 통해서 건축가의 진정성을 또 한번 느꼈습니다. 그것은 동시에 저에게 겸손을 느끼게 해주었어요. 알면 알수록 전에는 알지도 못했던 것을 재단하려 했다는 생각에 겸손해 졌죠.
Q: 프랑스와 영국사무소를 거쳐 한국에 오셨는데,
조호건축의 특징을 이야기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A: 저희는 ‘건축주가 가질 수 있을 만한 실질적인
이익이 무엇일지’의 고민에서 시작합니다. 땅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재료를 통해, 재료가 가지고 있는 디테일과 그곳에 담겨있는 아우라를 통해서 풀어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땅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건축주의 사업에서의 이야기가 되고 나의 건축이야기가 됩니다.
조호건축의 역할은 건축주를 대리해서 그 이야기를 풀어 쓰는 소설가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 건축은, 타자의 입장에서 보는 새로운 시각을 통해 인문학적/철학적/건축학적 언어로 만들어집니다. ‘저는 이런 스타일이기 때문에 이렇게 만들겠습니다’가 아니라
‘이러한 스토리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모습이 어떨까요?’라는 물음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건축의 모습은 재료의 특징으로 드러납니다. 그것은 다만 형태적인 특징이 아닙니다.
마치 영화 속에서 시퀀스를 구성으로 풀어내는 영화적 구조와 비슷하지요. 건축이 영화와
다른 점은 ‘땅’이라는 요소를 쓰는 것입니다.
새로운 무언가를 갈망하는 세대의 비전을 가지고 있는 클라이언트가
많이 생겼습니다. 영역을 확장시키고 소통시키는 역할이
많이 필요합니다. 여전히 건축은 건축, 미술은 미술, 등으로 영역을 그으며 답을 구하고 프레임을 만드는 의식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프레임을 깨부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17.10
이정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