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The Roof - Jean Nouvel

2026.02.13 관리자 조회수 84회

[상하이, The Roof - Jean Nouvel]


 장누벨은 스타일뿐 아니라 맥락을 중요시하는 건축가이다. 하지만 그의 건축이 지닌 매력은 단순 맥락적 해석을 넘어 과거와 현재가 충돌하고 대화하도록 만든다는 점에 있다. 즉 그는 건축을 도시의 아이콘으로 만들지만 그속에는 항상 역사적 맥락속에서 내재된 시적, 철학적 은유가 가득하다. 더 놀라운 점은 그가 만들어내는 모든 것들은 단순히 역사적 맥락에 그치지 않고 현대적 기술과 미래적 도전으로 가득차 있다는 점이다. 즉 그의 건축은 공학의 정점에 서서 시적 감성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파리 아랍문화센터에서는 이슬람 문화를 상징하는 기하학적 패턴을 빛조리개를 통해 다양한 공간감으로 해석해냈다. 리옹 오페라 센터에서는 신고전주의 양식 위에 반원형 유리, 철구조를 덧씌워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새로운 방식을 보여주었다. 루브르 아부다비의 돔은 빛의 비 Rain of Light라는 컨셉을 통해 지역적 특성과 결합된 시적 상상력의 극치를 보여준다. 즉 그는 대지가 지닌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새로운 건축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가 상하이에 완공한 The Roof 또한 이러한 그의 건축 철학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그렇다면 그는 The Roof를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해석한 것일까? 이를 위해서는 상하이의 독특한 역사적 배경, 조계지의 건축에 관해 살펴 봐야 한다. 조계지租界地는 말그대로 빌려서 통치하는 땅을 의미하는데 서구 열강이 특정 도시 내에서 치외법권을 가지고 자치적으로 통치하던 구역을 의미한다. 1842년 난징조약으로 제1차 아편전쟁이 끝나고 1845년에 오늘날 와이탄과 난 징루 일대에 영국 조계지가, 화이하이 중루, 신텐지를 중심으로 프랑스 조계지가 형성되었다. 즉 이곳을 할애받은 열강은 그들이 자치적으로 경찰, 행정, 세금, 심지어 법률까지 운영할 수 있도록 한 지역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조계지는 이곳을 지배하는 국가의 도시, 건축, 문화가 그대로 이식되는 장소를 의미한다.

 

 영국식 조계지에 지어진 대다수의 건물은 당시 영국 본토에서 유행한 신고전주의가 기반이 되어 대칭적이고 질서정연한 파사드를 기본형으로 기둥과 페디먼트 장식이 두드러지는 빅토리아 풍의 건축양식이 특징이 있다. 반면 프랑스 조계지는 비격자형 도로망과 프랑스식 아르누보와 아르데코 양식이 혼재되어있다. 영국 조계지가 금융, 경제, 관공서 위주의 건축이 주를 이루었다면 프랑스 조계지는 저층 단독주택과 프랑스식 주거블럭, 카페, 레스토랑, 상점이 주를 이루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장누벨이 디자인한 The Roof는 대표적인 프랑스 조계지인 신텐디新天地에 위치해있다. 푸싱루와 신텐디 일대는 프랑스 특유의 벽돌로 이루어진 낮은 정원형 건축이 주를 이룬다. 특히 건물과 보도 사이에 정원을 두어 사적영역과 보도 사이에 경계면을 모호하게 만들어 내는 것이 특징이다. 당시 조계지에는 외국인민 거주할 수 있었지만 점차적으로 중국인들의 유입이 늘어나게 되어 이들을 수용할 중간형태의 주거유형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때 중국 전통주거인 사합원四合院, 중정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4면에 건물이 배치된 형태가 기본이 되어 새로운 주거유형이 발전하게 된다. 즉 마당을 중심으로 가족내 서열, 성별에 따른 위계구조를 지닌 중국 전통공간인 사합원이 타운하우스 Terraced Housing 양식과 만나 중간밀도를 지닌 공동주택을 탄생시킨 것이다. 한국식으로 설명하면 조그마한 정원을 지닌 단독주택들이 합벽으로 붙어있는 연립주택과 같은 양식인 것이다. 아마 한국인이라면 누구가 가봤을 상해임시정부 건물이 이런 석고문(Shikumen) 주택의 전형에 속한다.

 

 The Roof가 위치한 신텐디新天地는 리롱(Lilong, 전통 골목주거) 주거중 석고문(Shikumen) 건축이 밀집했던 구역을 재개발하여 조성된 현대적 도시 문화공간이다. 장누벨은 이러한 리롱의 맥락을 이어받아 과거의 골목길이 지녔던 중성적 경계면과 예측 불가능한 동선의 흐름을 현대적 건축언어로 번역하려 하였다. 즉 전통 리롱 골목길이 서로 교차하고 이어지는 풍경을 현대 건축적 스케일로 옮긴 것이다. 복잡하고 정돈되지 않은 길과 골목의 감각적 요소를 도시적 볼륨을 통한 시적 상상력으로 해석하고자 한 것이다. 건물은 네 개의 동으로 구성되어 하나의 복합체처럼 연결되어 있으며 저층에는 쇼핑, 카페등 공공, 상업기능들이 배치되고 상층부는 오피스 및 업무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을 가로지르며 내부공간들을 연결하는 골목길은 지하공간과 연결되어 있어 내부 광장에서 소규모 행사가 가능하도록 계획되어 있다. 이렇듯 도시적 경계면을 모호하게 결합한 새로운 유형의 골목길은 세련된 상업 프로그램들과 만나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머무르고 경험하게 한다. 도심 속에 존재하는 외부의 소음, , 열등 다양한 요소로부터 완전히 닫히지도 열리지도 않은 골목길의 중성적 공간감을 통해 건축이 도시와 만나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안한 것이다.

 

 그는 이러한 중성적 경계면들을 좀더 역동적으로 구성하기 위해 2500여개의 화분으로 입면을 구성하였다. 건물 외벽과 아케이드 공간 곳곳에 식재용 화분을 설치하여 건축과 유기적으로 결합된 일체화된 자연 그 자체의 공간을 제안한 것이다. 이처럼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바뀌는 자연 식재는 도시 속 건축을 좀더 생동감 있고 역동적으로 변모시킨다. 사실 이 식재시스템은 단순 미학적 요소뿐 아니라 실질적 설비적 기능을 수행한다. 즉 도심의 미세먼지 저감, 열섬 효과 완화, 미기후 조정 역할을 하면서 도시의 살이있는 생명체로서 기능하게 하는 것이다. 외부에 쓰인 붉은 화분은 중국 전통건축에서 길상과 생명력을 상징하는 색이자 리롱의 전통 붉은 벽돌을 현재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모호한 정체성을 지닌 중국식 모던 건물 대신 상하이의 역사와 집단적 과거의 기억을 붉은 색을 통해 환기시키고자 한 것이다.

 

 건축이자 조경 그 자체인 이 새로운 도심 블록은 현대화된 리롱을 재현하며, 현재와 미래의 상하이를 상징한다. 건축과 조경의 경계가 해체된 이 도시적 볼륨은 기존 건축적 구법을 넘어, 새로운 유형의 건축 양식을 시사한다. 더 루프는 기존 질서를 벗어난 설계와 구조를 기반으로, 구조 엔지니어와 조경팀의 협업을 통해 탄생한 친환경 건축물이다. 식재 모듈의 표준화, 배수 및 빗물 시스템, 에너지 절약 등 다양한 현대적 과제를 공학적으로 해결함으로써, 새로운 타입의 건축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또한 장 누벨 건축의 핵심 요소인 빛은 더 루프에서도 차양, 루버, 깊은 발코니, 조경 식재를 통해 건축과 도시를 연결한다. 이는 미적 특이성을 구현할 뿐 아니라, 덥고 습한 상하이 여름에도 쾌적한 내부 환경을 제공하는 기후적 대응이기도 하다.

 

 장 누벨의 이러한 시도는 상하이의 역사적 맥락과 장소적 상징성, 나아가 미래적 건축적 대안으로 귀결된다. 그는 조계지가 지닌 역사적 의미를 신텐디라는 장소적 맥락 속에서 재해석하며, 이를 단순한 공간 재구조화가 아닌 새로운 미래적 건축 제안으로 발전시켰다. 지금까지 그의 수많은 혁신적 건축물 가운데서도, 더 루프가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과거와 현재를 상하이에 국한하지 않고, 미래적 건축 언어로 재해석한 점 때문일 것이다.


2025.11

이정훈

[이 글은 모닝캄(Morning Calm)으로부터 공식 기고 의뢰를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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