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ntre Pompidou: 나의 사적인 미술관

2026.02.13 관리자 조회수 84회

[Centre Pompidou: 나의 사적인 미술관]

 

 2004년 일본 건축가 시게루 반은 프랑스 동부에 위치한 도시 메츠(Metz)에 지어질 새로운 퐁피두센터를 위해 파리 퐁피두센터 5층에 임시사무소를 열게 되었다. 유학 중이던 나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 메츠 퐁피두센터 프로젝트를 위해 일할 기회를 갖게 되었고 그 덕분에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1년 반의 시간을 보냈다. 배움의 열망이 강렬했던 그 시절 매일 마주했던 퐁피두센터의 공간은 생생한 건축 학교 그 자체였다. 당시 참여했던 메츠 퐁피두센터를 통해 건축 프로젝트를 발전시키는 방법을 배웠다면 사무실 공간이었던 파리 퐁피두센터는 건축이 지닌 힘과 가치를 매일 몸으로 깨닫게 해준 곳이다. 내가 느낀 퐁피두센터는 단순한 도서관, 미술관을 넘어서 도시를 움직이고 역사를 만들어가는 공간이었다. 방대한 양의 문화예술 자료를 무료로 볼 수 있는 도서관부터 현대예술의 역사가 간직되어 있는 상설미술관, 항상 새로운 작가와 예술적 흐름을 제시하는 기획전시까지 영감의 장소이자 문화적 용광로 같은 공간이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도시적 맥락 속에서 돋보이는 경사진 광장은 모든 이들의 퍼포먼스를 담아내는 훌륭한 도시적 여백이었다. 그 누구나 그곳에서는 자유롭게 자신의 공연과 주장을 할 수 있었으며 새로운 생각과 자유를 공유하였다.

 

 건축에 있어 공간이 지닌 혁신성과 창의성이란 단순히 기능을 담기 위한 물리적인 영역이 아닌 시대를 넘어선 새로운 질서에 대한 제안과 맥을 같이한다. 사실 퐁피두센터가 지향했던 것은 고정된 영역이 아닌 무한히 변화가능한 잠재적 공간을 의미했기에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 미술관, 도서관의 기능적 영역 구분의 효율적 방식뿐 아니라 물리적인 공간 분할을 넘어선 근대와 현대 건축이 지닌 구조와 공간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고정되지 않는 공간으로의 진화, 그 불확정적인 공간을 구축하기 위한 공간은 프로그램의 확장 및 변경에 따라 무한 변경가능한 공간으로 계획되어 있는 것이다. 즉 그것은 르코르뷔지에의 돔이노(Dom-ino) 시스템부터 꿈꿔왔던 공간이 벽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새로운 시작점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러한 혁신적인 디자인을 구조적으로 해결한 엔지니어 피터 라이스(Peter Rice)가 없었다면 퐁피두센터는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건축의 역사에서 모든 공간은 구조적인 혁신을 거듭해왔다.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가 그러했으며 근현대 건축의 역사가 그러했다. 로마네스크의 크로싱 볼트(Crossing Vault)에서 고딕성당의 첨두아치(Pointed Arch)로의 변화는 단순히 건축적 진화를 넘어서 시대의 철학, 사회학적 변화를 의미했다. 즉 구조적 진화는 단순히 공간적 문제를 넘어서 이념적, 시대사적 공간론으로 의미를 진화시킨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피터 라이스가 퐁피두센터에서 고안한 ‘Steel Gerberettes’는 44.8m의 트러스를 지지하기 위한 공학적 수단을 넘어서 구조로부터 자유롭고자 한 공간의 이념을 상징한다.

 

 나는 수십 년 전의 공학적 성취가 아직까지 유효하며 아직 이보다 혁신적인 공간이 나오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퐁피두센터의 가치를 새삼 깨닫곤 한다. 건축가의 상상이 구조 엔지니어의 또 다른 상상을 만들어내고 인문과 기술이 만나는 지점을 통하여 공간의 진화를 이루어낸다는 점은 퐁피두센터가 남긴 유산이자 미덕이다. 건축이란 뛰어난 건축가 한 명이 만들어내는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좋은 건축가를 선택할 수 있는 혜안을 지닌 건축주, 건축가의 혁신적인 안을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엔지니어, 그 창의적인 공간을 풍요롭게 사용할 사용자가 만들어내는 일종의 시공간 종합예술이다. 나에게 있어 퐁피두센터는 운명처럼 나의 건축 기행의 시작점이 되어왔고 여전히 나의 건축적 사고와 과정을 지배하고 있다. 그리하여 되묻는다. 과연 우리는 건축적 혁신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가?

 

2018.10

이정훈

[이 글은 Bazaar 매거진으로부터 공식 기고 의뢰를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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